조길익 소장의 조경더하기 47

한겨울이다. 요즘 들어 지금껏 맛보지 못했던 매서운 추위가 우리 몸을 열흘 가까이 꽁꽁 얼어붙게 하더니 펑펑 내리는 함박눈에 단지는 금세 하얀 눈밭으로 변해버렸다. 이런 추윌랑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마냥 즐기는 나무가 있으니 바로 자작나무다. 눈처럼 흰 수피를 자랑이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늘씬하게 곧추선 자작나무가 우리가 관리하는 아파트 단지의 겨울 풍경을 이국적으로 수놓고 있다.

자작나뭇과의 자작나무(White Birch, 백화피(白樺皮), 백단(白椴), 화수피(樺樹皮), 화목피(樺木皮))는 키가 30여m에 이르는 큰 키 갈잎나무로, 자라는 남방한계선이 북한지역에 달할 정도로 추운 곳을 좋아한다. 만주를 지나 영하 30도에 이르는 시베리아 벌판의 혹한도 그리 두꺼워 보이지 않는 하얀 껍질 하나로 당당하게 버티는데 보온을 위해 기름종이처럼 얇은 껍질이 겹겹이 쌓여 있다. 마치 동지섣달 얇은 옷을 여러 겹 켜켜이 껴입는 우리네처럼.

그래서 흰 나무껍질은 옆으로 얇고 매끄럽게 잘 벗겨지기에 종이가 귀하던 시절엔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쓰였다. 영어 이름엔 Birch의 어원 ‘글을 쓰는 나무 껍데기’란 뜻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거기다 기름기가 많다 보니 잘 썩지도 않을 뿐더러, 불쏘시개로 탈 때 나는 소리 ‘자작자작’이 그의 이름으로 붙여졌으니 재밌는 작명이 아닐 수 없다.

흑자작나무
흑자작나무

자작나무

-류시화-

아무도 내가 말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아무도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없다
사랑은 침묵이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면
이미 내 어린 시절은 끝나고 없다

이제 내 귀에 시의
마지막 연이 들린다 내 말은
나에게 되돌아 울려오지 않고 내 혀는
구제받지 못했다
 

암꽃과 수꽃
암꽃과 수꽃

자작나무는 암수한그루로 세모난 잎과 함께 봄에 꽃이 피는데, 연노란색 수꽃은 기다란 꼬리모양꽃차례가 아래로 치렁치렁하게 늘어지고, 수꽃보다 짧고 가는 암꽃이삭은 곧게 섰다가 손가락 모양의 열매가 익으면서 밑으로 쳐진다. 목재는 황백색에 무늬가 아름답고 가공하기도 좋아 가구나 조각, 실내 내장재 등으로 쓰이며 펄프로도 이용한다. 다른 수목과는 달리 인상적인 밝은 회백색의 나무껍질이 아름다워 정원과 공원 등에 관상수로 널리 사랑받는 조경수다.

단풍
단풍
햇열매
햇열매

눈 속 자작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명화 닥터 지바고의 몇몇 장면들이 떠오른다. 도입부는 물론이고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 위로 눈보다 흰 자작나무가 나타나면서 주제음악 ‘라라의 테마’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올겨울 산림청이 명품 숲길 50선으로 뽑은 눈 덮인 인제 자작나무 숲길을 다시 거닐어 볼 요량이다. ‘Somewhere my love’를 흥얼거리면서···. ‘내 사랑이여 우리가 같이 노래 부를 때가 곧 올 거예요. 온 누리에 덮인 눈이 봄이 올 것을 시샘한다 해도(Somewhere, my love there will be songs to sing. Although the snow covers the hope of spring)’

수피
수피

※ 관리 포인트
- 척박한 땅에서도 잘 적응하며 건조한 날씨에도 잘 견디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 햇볕을 좋아하며 거름기 많고 물 빠짐이 좋은 사질 양토에서 잘 자란다.
- 한데서 겨울을 나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지만 더위에는 약하다.
- 자라는 속도가 빠르지만 공해에는 약한 편이라 도심 속 가로수로는 적절치 않다. 병충해는 거의 없으며 전지는 피한다.
- 번식은 가을에 씨앗을 따서 바로 심거나 노천매장 했다가 이듬해 심는다. 봄과 가을에 꺾꽂이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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