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얼마 전 어느 아파트의 동대표 한 분으로부터 상담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 내용을 들어보니 변호사로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그는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처리한 일들이겠지만 관련 법령이나 해당 아파트 관리규약을 위반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고, 관할구청의 과태료 처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는 동대표 해임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아파트 관련 분쟁을 주로 다루다 보니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주체’, ‘동대표’라는 단어는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동대표와 관련해서는 그 선출절차에서도, 해임절차에서도 법령이나 관리규약 위반을 이유로 절차의 적법 여부를 문제 삼는 법적 분쟁이 많다. 연차가 낮은 어린 변호사일 때에는 이런 사건이 낯설기도 했지만 ‘도대체 왜?’라는 원초적인 의문이 들었었다. 대관절 동대표가 뭐길래 그 자리에 이렇게 연연하는 것일까 하는 원초적인 의문이었다.

그 의문이 지금도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에서 이뤄지는 동대표 선거절차나 해임절차, 그 밖에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각종 분쟁을 들여다보면 결국 ‘정치’가 아닐까 싶다. 나랏일만 정치겠는가? 마을 일도 결국은 정치이고, 요즘 같은 시절에는 아파트야말로 커다란 마을이 아니겠는가.

동대표 역시 사실은 막강한 권력이 있고, 그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공약도 만들고 선거운동도 해서 당선되는 것이다. 동대표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구성원으로서 입주자대표회의가 하는 의사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아파트 입주자의 권리·의무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석해 표결할 수 있고, 회장이나 감사, 이사와 같은 임원에 선출될 수 있으며 입주자대표회의 소집을 요구하거나 회의 안건을 제안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 출석수당이나, 업무추진비도 받는 것이다.

권한만 주어지는 자리는 없다. 권한의 이면에는 반드시 준수해야 할 책무가 따른다. 권한이 크면 클수록 의무 역시 커진다.

동대표는 입주자대표회의에 대리 참석하거나 서면으로 의결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참석해야 할 의무가 있고,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로 그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충실 의무도 있다. 주어진 동대표의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함에 있어서 법령 위반이나 관리규약을 위반하지 않고 적법하게 행사해야 함은 물론이다.

전화 상담을 했던 그 동대표는 동대표라는 자리에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마치 어마어마한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호도되는 것이 너무나 불명예스럽고 치욕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유행어처럼 번졌던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내가 이러려고 동대표가 됐나 자괴감이 든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그 말이 참 우습기도 하고, 그 동대표가 처한 난처한 상황에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더 이상 위로의 말을 전할 수는 없었다. 동대표란 결국 그런 자리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국의 대통령조차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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