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체 수립단계부터 현실 맞지 않게 이뤄져

형식적으로 작성돼 물량 등 엉망인 경우 많아

사용검사권자인 지자체 무관심으로 비롯

[아파트관리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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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공동주택의 장기수선계획은 주요 시설의 적정한 보수·교체 등을 통해 공동주택을 오랫동안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첫 장기수선계획 작성 의무를 갖는 사업주체(시행사)가 시작부터 장기수선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검토 및 조정을 거치는 관리단계에서 많은 문제가 되고 있다. 장기수선계획 수립 단계의 문제가 유지관리의 어려움으로 이어져 공동주택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사용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입주 단지 관리를 맡아 사업주체가 수립한 장기수선계획을 인계받은 관리주체들은 “처음 장기수선계획을 받아 살펴보면 너무 엉망이어서 고쳐야 할 것 투성이”라고 입모아 말한다. 장기수선 항목의 물량이나 장기수선충당금 등이 적정하게 산출돼 있지 않아 장기수선계획을 뜯어고치는 게 일이라고 토로한다. 아파트마다 다른 지붕 등 두께·종류·길이며 적용된 공법 등을 준공도면을 보며 물량을 다시 수정해야 해 건설 전문가가 아닌 관리소장이 수정하기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업주체·건설사·지자체
그 누구도 관심 없어

이처럼 장기수선계획 수립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이유는 근본적으로 사용검사권자인 지자체가 사업주체로부터 장기수선계획을 제출받을 때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사용승인을 해주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관리업계 관계자는 “지자체가 건축, 전기, 조경 등 전문가를 모두 갖추지 않아 장기수선계획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이를 정확히 검토하고 판단할 수가 없고 보완 조치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처럼 사업주체가 제출한 장기수선계획이 적정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통과되기 때문에 사업주체도 장기수선계획 수립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다른 건설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시공사는 건축행정시스템(세움터)에 준공서류 등을 등록하는 등록대행업자에게 장기수선계획 작성 업무를 맡기고 있으며 이에 대해 본사의 검토과정도 거치지 않을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아 대행업자도 무료 혹은 염가에 장기수선계획을 아무렇게나 작성하는 일이 발생한다.

물량 등을 정확히 알고 있어 장기수선계획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는 사업주체나 시공사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결국 지자체와 사업주체가 장기수선계획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수립단계에서부터 계획이 현실에 맞지 않게 형식적으로만 작성되고 있다.

관리현장에서는 “조건이 다른 단지임에도 사업주체 수립 장기수선계획서가 타 단지와 완전히 똑같은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는 말도 나온다.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가 발간한 '장기수선계획 실무 가이드라인'의 장기수선계획 검토결과 예시. 현실에 맞지 않은 항목 등이 지적되고 있다.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가 발간한 '장기수선계획 실무 가이드라인'의 장기수선계획 검토결과 예시. 현실에 맞지 않은 항목 등이 지적되고 있다.

책임감 없는 사업주체 때문에
관리주체만 고군분투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장기수선계획 때문에 관리단계에서 애먼 관리소장들만 골치를 앓게 된다. 장기수선계획에 맞춰 보수공사를 실시하면 “멀쩡한 것을 뜯어고쳐 돈을 쓴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입주민들이 있는 가운데, 효율적인 관리 등으로 수선주기를 미루기 위해 계획을 조정하려 해도 ‘전체 입주자 과반수 동의’라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쉽지가 않다.

또 장기수선계획은 관리주체가 지자체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는 사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관리주체는 장기수선계획 때문에 많은 금액의 과태료를 부과받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처음부터 장기수선계획을 잘못 짠 사업주체는 이에 대해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지자체가 관리주체 검토·조정 장기수선계획과 관련 업무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살피고 과도하게 간섭·처벌하는 것과 달리 처음 장기수선계획을 작성하는 사업주체에 대해서는 안일하게 대하는 것도 아이러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2021년 12월 9일 ▲사업주체가 수립해 사용검사권자에 제출하는 장기수선계획을 사전에 공동주택관리 전문기관을 통해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고 ▲긴급한 보수·보강 필요시 혹은 시설관리상태가 양호해 수선주기 연장이 타당할 경우 등에는 입주자대표회의 의결로 장기수선계획을 수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당시 박 의원은 “사업주체가 수립하는 장기수선계획이 공동주택의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사용검사권자의 보완 요청이 잘 이뤄지지 않아 적합한 유지보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며 “비효율적인 장기수선계획 수립과 조정은 입주민 권익 침해로도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의 장기수선계획 담당 사무관은 “사업주체가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해 사용검사권자에게 제출하기 전 전문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은 다수의 민간업체가 참여하고 있는 관련 시장에서 일부 전문기관에게만 독점적우월적 지위를 부여하게 돼 민간업체의 반발 발생 우려가 있다”며 “장기수선계획은 사업주체, 지자체,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주체 등이 각 단계별역할별로 성실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는데 사업주체에게만 전문기관 적정성 검토 의무를 추가로 부과하게 되면 나머지 구성원들의 책임성이 저하되는 역효과도 발생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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