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

범은 호랑이의 우리말이다. 퓨전 국악 밴드 이날치가 발매해 인기를 끈 곡의 제목으로,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도쿄올림픽 때는 우리나라 선수촌 아파트에 걸렸던 현수막의 글귀로도 유명하다. 일본의 괘변으로 이순신 장군의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 현수막을 철거하고, 이 자리에 다시 설치된 것이 ‘범 내려온다’ 현수막이다. 한국 선수들의 도전정신을 호랑이의 기상에 빗대면서도 은유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

‘범 내려온다’는 원래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수궁가의 한 토막이다. 토끼 간을 구하러 육지에 올라오느라 기진맥진한 별주부가 토끼를 발견하고 토끼를 부른다는 것이 ‘토(兎)선생’을 ‘호(虎)선생’으로 잘못 불러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온다는 장면이다. 우리 선조들의 해학이 돋보인다.

호랑이는 우리에게 상징적이면서도 영물의 대명사다. 그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그중에서도 육십간지, 천간의 해석으로 봤을 때 검은 호랑이의 해다. 사실 검은 호랑이는 낯설다. 전 세계에 몇 마리 없다고 한다. 그만큼 희귀종이다. 검은 호랑이는 벵갈호랑이의 유전적 변이 때문에 태어난 일종의 돌연변이 중 하나라고 하는데, 몸집은 여느 호랑이보다 작고 사람 눈에도 잘 띄지 않을 만큼 행동이 민첩하단다.

호랑이는 전통적으로 강직함을 상징한다. 호랑이는 머리가 좋고 용맹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뛰어난 지혜를 지녔기에 리더의 자질을 타고 났다고 말한다. 본인의 일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한만큼 타인의 간섭을 싫어한다.

사실 호랑이는 무의식적으로 한글이라고 생각하지만 한자어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유력한 해석이다. 한자 ‘호(虎)’에 접미사 ‘~랑이’라는 말을 붙였다는 말이 있지만, ‘랑이’라는 접미사가 없다는 지적이 있고 보니, 이보다 더 우세한 설명이 한자 ‘호랑(虎狼)’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생겼다는 설이다. 범을 뜻하는 ‘호(虎)’ 한글자로 표시할 수 있는데 굳이 이리를 뜻하는 ‘랑(狼)’을 붙인 건 왜 일까. 아마도 이와 같은 동물을 두루 포함해 지칭할 때 ‘호랑’이라고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랑’의 원래 뜻은 ‘범과 이리’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호랑’이 굳어져서 호랑 자체가 범을 뜻하는 단어로 변화한 것으로 본다.

어쨌든 호랑이는 무서움의 대명사다. 호랑이에게 당하는 피해는 ‘호환’이라 해 큰 골칫거리였다. 또 집의 대문이나 기둥에 ‘호’라고 글을 써 붙여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기를 기원하는 부적으로 유명하다. 호랑이의 무서움을 통해 질병이나 재앙을 쫓기 위한 상징물로 경복궁 정전에 돌로 만든 석호를 세우기도 했다. 사악함을 쫓고 용맹의 상징으로 왕릉의 둘레돌에도 많이 쓰였다. 민화의 소재로도 많이 다뤄졌다. 이 부적 신앙이 예술로 승화돼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 맹호도다.

한편으로 호랑이는 여유롭기까지 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라는 말처럼 아주 오래전 옛날 이야기를 할 때 구수하면서도 재치 있게 거론된다.

올 한 해 공동주택 관리 분야와 관련한 모든 분들에게도 이와 같은 호랑이의 기상과 상징처럼 건강하고 길한,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그런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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