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부당지시 불응에 위협 받는 '관리직원 안전'

故이경숙 소장이 근무했던 자리. 당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상주직원이 없어 고인이 회계 등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했다. <고경희 기자>

회의록 위조·세대 화장실 보수 등 거절 이유로 괴롭혀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지난해 10월 업무 추진비를 올려 달라는 부당요구를 거절했다는 등의 이유로 입주자대표회장에게 故이경숙 관리소장이 살해된 지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입주민 등이 관리소장을 상대로 폭행, 협박 등 위력을 사용해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아파트 관계자 및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갑질 방지 대책을 모색하는 등 법제도적 개선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입주민의 관리소장 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 부당업무 지시 거절을 이유로 한 폭행, 폭언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 김포시 아파트 관리소장 A씨는 최근 선거관리위원으로부터 욕설과 함께 팔꿈치로 복부를 가격 당하는 등 폭언·폭행을 당했다. 선거관리위원회 회의에서 언급되지 않은 내용을 회의록 공고문에 추가해달라는 지시를 거절했다는 이유에서다. 선관위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관리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방역을 위한 가림막을 파손했으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주의를 준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A소장에 따르면 이 선관위원은 평소에도 관리사무소에 자주 찾아와 퇴근한 직원들에게 “빨리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지시하고 소리를 지르는 등 갑질을 일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A소장은 지난 9월 경찰에 폭행치상, 강요, 기물파손, 업무방해, 모욕 혐의로 선관위원을 고소했다.

A소장은 “선관위원의 폭행으로 흉부를 다쳐 급성 위염에 시달리고 있다”며 “경찰에 고소한 뒤 선관위원이 동대표들과 함께 관리사무소로 찾아와 사과를 하며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했지만 법적 처벌을 받게 해 다시는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인천 서구 아파트 입주민이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인 B씨는 지난해 9월 비대위가 제작한 엘리베이터 공사 문제점에 대한 안내문을 제작해 세대별로 배포했으나, 경비원 등이 이를 수거한 것에 감정이 좋지 았다. 관리소장에게 이를 따지던 중 말다툼이 됐고 화가 난 나머지 손으로 소장의 목을 조르고 가슴을 밀쳤다. 이에 인천지방법원은 B씨를 벌금 200만원에 처했다.

서울 강서구 아파트 입주민 C씨는 자신의 인테리어 공사와 관련해 관리소장이 ‘공사 중단 및 원상복구 요구서’, ‘베란다 확장 시 주의 사항’ 등의 공고문을 붙인 것을 보고 화가 나 소장에게 “소장이 아무것도 모르고 자격이 없다, 네가 소장이냐, 소장이 건축 법규도 모르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막고 있냐, 너 내가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 공고문을 떼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외부로 나가려는 소장을 가로 막았다. 또 C씨가 손을 들어 올려 때릴 것 같은 행동을 하자 소장이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C씨는 휴대전화를 뺏기 위해 소장을 밀쳤다.

업무방해, 폭행 혐의로 기소된 C씨에 대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벌금 100만원에 처하는 한편, 폭행에 관한 공소는 피해자인 소장의 처벌불원의사로 기각했다.

광주 동구 아파트 관리소장은 입주민의 세대 화장실 보수 요청에 ‘각 세대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고 답했다가 입주민으로부터 욕설과 함께 목이 잡히고 위협을 당하는 등 폭행을 당했으나, 소장이 처벌을 원하지 않아 입주민에 대한 공소는 기각됐다.

“주변에 피해 사실 알려 해결해야”
입대의·업체 등의 직원 보호 노력도

동료 소장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고경희 기자>

공동주택관리법은 입주자등이 관리소장의 업무에 부당 간섭을 하는 경우 지자체장에게 이를 보고하고 사실조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대표회의는 부당 간섭 보고나 사실 조사 의뢰, 조치를 이유로 관리소장을 해임하거나 해임을 주택관리업자에게 요구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故이경숙 소장이 소속 위탁관리업체 등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갈등을 해결하려고 했듯(본지 제1316호 게재) 부당간섭 및 지시 갈등 해결 과정에서 다른 입주민, 관리업체와의 또 다른 갈등을 원치 않고 생계가 달려 있어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소장들도 적지 않아 주변의 관심이 더욱 절실하다.

故이경숙 소장 사건 이후 대한주택관리사협회(이하 ‘주관협’)는 상근 노무사를 채용해 노무상담을 진행하고 회원권익위원회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주관협은 기존에도 회원권익위원회와 고문 변호사를 통해 주택관리사 회원들의 고충을 해소하고 있었다. 시·도회, 권역별 회원권익위원회 또는 중앙회원권익위원회에서 고충을 접수 받은 후 현장에 방문해 필요 시 입주자대표회장 등에 면담을 요청하고, 관련 법 위반사실이 있을 경우 고소·고발을 하거나 소송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故이경숙 소장 사건에서 주관협 회원권익위원회는 소송을 위한 변호사 선임을 지원하고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 그 결과 가해 입주자대표회장은 1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것에 이어 2심에서 형량이 징역 20년으로 가중됐고 지난 9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정됐다.

주관협 정책팀 명관호 부장(법무담당관 변호사)은 “협회 회원권익위원회에 고충을 접수하면 자문변호사, 노무사의 상담과 함께 소송을 위한 각종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고 주택관리사 동료들의 갈등 해결 노하우를 전달받을 수 있다”며 “무엇보다 피해 소장 본인이 주변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관위원에게 폭행을 당했던 A소장은 동료 소장들과 언론에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관리사무소에 갑질을 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며 동대표들의 중재·가해 선관위원의 사과에도 소송을 이어가는 이유를 밝혔다.

이와 함께 관리소장 등이 업무를 소신껏 수행할 수 있도록 동대표 등 입주민들의 협조와 관리업체의 적극적인 개입도 요구된다.

한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들이 먼저 관리소장의 관리 전문성을 인정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입주민 등과 면담해 문제를 해결토록 나서야 한다”며 “관리업체에서도 위탁관리계약 유지에만 급급하지 말고 소속 직원인 관리소장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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