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 요즘 지상에 주차장이 없는 공원형 아파트를 종종 볼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아동 보행안전과 친환경 생활여건을 선호하면서 부동산시장의 큰 관심사였다.

이 공원형 아파트에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막으면서 입주민과 택배기사들 간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지상에 택배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자, 택배기사들은 각 세대 앞까지 배송해오던 것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로 택배 주문이 더 폭발적으로 늘고, 활성화된 터에 일어난 사안이라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평행선 같은 이 아파트의 갈등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설계 때부터 ‘차 없는 아파트’로 계획됐고, 지상 통로는 인도용으로 만들어져 차량 진입을 막았다는 주장이다. 택배차량이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면 되겠지만 문제는 그 지하주차장의 제한높이가 2.3m에 불과해 보통 2.5~2.7m인 일반 택배차량이나 탑차가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손수레를 이용해 지상으로 배송하거나 저상차량으로 바꿔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택배기사들은 이런 요구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손수레를 쓸 때 배송시간이 크게 늘어나고, 물품손상 위험도가 커지며, 저상차량으로 바꿀 때는 비용 외에도 작업자들의 질환 발생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는 항변이다.

이에 해당 아파트는 택배기사들이 노조 등 집단의 힘을 이용해 집단이기주의에 갑질하는 아파트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다시 반발하고 있다.

앞서 2018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도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해 ‘택배 대란’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논란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2019년 1월부터 지상공원형 아파트에 대해 지하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높일 것을 의무화하는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규칙’,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그래서 2019년 이후에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아파트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 갈등이 일어난 아파트는 2016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바뀐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개정 전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해 사용승인을 받았다.

택배차량의 출입을 막는 아파트는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다른 여러 아파트들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갈등은 언제 어디서든 재연되고 반복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근본적으로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지하주차장의 층고를 높게 설계하고, 그에 맞게 시공하는 것이 먼저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저상차량으로 변경 후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실버택배나 무인택배함을 활용하거나, 그냥 택배차량의 지상도로 이용을 허용하거나 어느 방안이든 관계자들과 입주민의 절차에 따른 의견수렴, 타협에 의해 결정하면 된다.

결국 이 문제는 소통의 문제다. 아파트를 재건축하거나 리모델링을 하지 않는 한 타협을 하거나 선택해야 한다. 어느 방안이든, 누구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불편함이 남는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곳이 관리사무소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그야말로 바늘방석이다. 배송된 물품이 단지 외부에 내려놓아질 경우에는 분실·파손 등 책임이 얽혀 있어 따로 옮기거나 치우지도 못한다.

어느 한 쪽의 희생만 요구하면 후유증이 깊어진다. 냉철하게 한발씩 물러나 합리적 방안을 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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