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부녀회장이 아파트 공금을 함부로 썼다는 이유로 기소됐고, 1·2심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유죄 판단은 횡령죄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무죄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7도13252 판결). 자칫 아파트 공금을 유용하고도 무죄로 판단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원심의 판단은 부녀회장이 사용한 돈이 아파트 입주민 전체에 귀속되는 아파트의 공금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대법원은 위 돈이 아파트의 공금이 아니라 부녀회의 총유였기 때문에 유죄 판단의 전제부터 틀렸다고 본 것이다.

사건은 이렇다.

부녀회장 A는 1997년경부터 2014년 12월경까지 문제 된 아파트(이하 ‘본건 아파트’라 약칭)에서 부녀회장직을 맡았던 사람이다. 본건 아파트 부녀회는 재활용품 처리비용, 세차 권리금, 게시판 광고 수입, 바자회 수익금 등의 수입이 있었고 기존 관행에 따라 이를 부녀회가 관리하고 있었다. A는 이렇듯 부녀회가 관리하고 있던 위 수입금을 2010년 12월경부터 2014년 12월 경까지 총 68회에 걸쳐 약 7100만원 상당을 임의로 소비했다(‘부녀회 수입금 사용’이라 약칭). 그 밖에도 A는 부녀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휘말린 여러 송사에 대응하는 변호사 비용 등으로 부녀회비를 사용하기도 했다. A는 부녀회의 전 총무 B씨가 자신을 모욕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형사재판을 받게 됐고, 부녀회원과 동대표를 겸임한다는 이유로 동대표 자격이 상실되고 보궐선거 실시가 임박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보궐선거금지 가처분 신청 등의 절차를 진행했다. A는 위 모욕 사건 관련 변호사 비용 명목으로 부녀회비 중 230만원 상당을, 위 명예훼손사건 관련 변호사 비용과 벌금, 보궐선거금지가처분 관련 변호사 비용 등의 명목으로 650만원을 각각 소비했다(이하 ‘부녀회비 사용’이라 약칭). 이와 같은 부녀회 수입금 사용이나 부녀회비 사용에는 부녀회원들이 모두 동의한 상태로 보인다(공소사실에 이들의 공모관계로 적시돼 있는 것에 비춰 보면 A가 부녀회원들의 동의 없이 임의로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사료된다).

결국 A는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그 당시 시행 중이던 구 주택법령, 본건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르면 아파트 잡수입은 해당 연도의 관리비 예산 총액의 100분의 2 범위에서 예비비로 처분하고, 남은 잔액은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하며 관리주체인 관리사무소장 등에 의해 관리하도록 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자생단체로서 아파트 잡수입금의 수입·지출 등 예산집행에 관여할 수 없는 부녀회가 임의로 이를 사용한 것은 횡령이라는 논리였다. 원심 법원 역시 구 주택법령 및 본건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르면 부녀회 수입금이나 부녀회비 역시 입주자 전체의 소유인 잡수입에 해당하고, A에게는 위 잡수입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를 함부로 임의 사용한 것은 횡령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본건 아파트 부녀회는 이후 13명을 회원으로 두고 회장, 부회장 등 임원을 두는 내용의 회칙을 제정함으로써 별도의 단체성을 갖게 됐다. 즉 부녀회는 입주자대표회의의 하부조직이나 부속조직이 아니라 아파트 주부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성된 단체로 회칙과 임원을 두고 아파트 내에서 입주민 봉사활동이나 수익사업을 하는 단체로서의 실체를 갖고 활동하는 비법인 사단이다. 공소사실 기재 행위 당시 시행 중이던 구 주택법령에 따르더라도 잡수입은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공동주택을 관리하며 발생하는 것으로서 그 수입이 입주자들 전체에 귀속하는 것이어야 하므로 공동주택 단지 내 시설 이용과 운영으로 발생하는 모든 수입이 일률적으로 위 주택법령이나 관리규약이 정한 잡수입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사안의 경우 부녀회는 재활용품 처리 및 판매 업무, 아파트 내 세차업자 선정 및 그 계약과 관리, 아파트 내 게시판 광고 수주 및 관리, 아파트 단지 내 장소를 활용한 장터 또는 바자회 개최 등 활동을 지속해 왔다. 이와 같은 부녀회 활동으로 취득한 수입을 입주민을 위한 경로잔치 비용, 실버대학 지원비용, 장학금 등으로 지출했는데 입주자대표회의 역시 이 같은 부녀회의 활동과 재정 운영에 관해 이의 제기 없이 용인해 왔다. 본건 아파트 관리규약 역시 공동주택관리와 관련 있는 부녀회의 운영기준을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하도록 한 규정만 뒀을 뿐이다.

따라서 본건 아파트 부녀회는 최소한의 회칙을 제정하고 조직을 갖춰 사회적 활동을 해온 비법인 사단으로서 부녀회가 구성원인 부녀회원들로부터 징수한 부녀회비는 부녀회원들의 총유재산이지 입주자 전원의 소유가 아니다. 또한 관리규약에 부녀회의 공동주택 관리활동으로 인한 수입을 입주자대표회의 수입으로 귀속하도록 정한 바 없고, 부녀회와 입주자대표회의 간에 그와 같은 합의도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녀회가 공동주택 관리활동으로 얻은 수입금 역시 부녀회원들의 총유로 귀속된다. 따라서 부녀회원들의 총유재산인 부녀회비 및 위 수입금이 구주택법령이 정한 잡수입으로서 입주자대표회의의 소유로 의제된다고 볼 수 없다. 결국 A가 임의로 사용한 금원은 ‘타인 소유’가 아니라 부녀회의 총유재산이므로 부녀회원들의 동의를 받아 사용한 것을 횡령이라 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형법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한 경우 횡령죄로 처벌한다. 즉,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재물’이어야 하고,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사안의 경우 대법원은 부녀회장이 횡령했다는 금원의 성격은 부녀회원들의 총유재산일 뿐 입주민 전체에 귀속되는 아파트 공금이 아니라고 봤다. 이와 같이 판단한 근거는 부녀회가 단체로서의 사회적 실체를 갖춘 비법인 사단에 해당해 입주자대표회의와는 별개의 단체에 해당한다는 점, 당시 시행 중이던 구 주택법령의 잡수입 규정에 따르면 잡수입은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관리하며 발생하는 것으로서 그 수입이 입주자들 전체에 귀속되는 것이어야 하므로 공동주택 내 시설을 이용하고 운영하며 발생하는 모든 수입이 일률적으로 잡수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관리규약에 부녀회가 재활용품 처리 및 판매, 장터 개최 등의 활동으로 취득한 수입을 입주자대표회의 수입으로 귀속시키도록 정하거나 따로 합의한 바도 없다는 점 등이다.

물론 부녀회의 총유 재산 역시 부녀회장의 개인적인 재산이 아니므로 이를 함부로 쓰게 되면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소사실은 아파트 공금인 잡수입을 관련 법령이나 규약에 규정한 용도대로 사용하지 않고 함부로 사용했다는 점이었으므로 해당 금원이 아파트 공금인 잡수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무죄 취지로 판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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