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부동산관리투자전략최고경영자과정 곽도 교수

지금부터 10여년 전 일이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실시해오고 있는 공동주택 관리 우수아파트 시상식에서 당시 권도엽 국토부 장관의 기념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다. 당시 장관의 발언 요지는 “지금까지 정부는 아파트건설에만 매달려 왔다. 앞으로는 아파트건설 위주에서 이미 지어 놓은 아파트의 유지 관리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입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국토부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올바른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다. 2019년 11월 기준으로 전국의 아파트 시가 총액은 3352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전 국민의 76%가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아파트 거주자들의 바람은 쾌적한 환경에서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유지 관리가 잘돼 아파트 가치가 보존되고 일상생활에서 이웃과 더불어 웃음을 나누면서 소소하게나마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 공동주택 관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마디로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부의 정책은 변한 것이 없고 당시의 현안들이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실정이다. 외형적으로는 정부가 공동주택관리법을 제정해 공동주택관리의 목표를 ‘공동주택을 투명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 국민의 주거수준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같은 법 제1조에 명시하고 있다. 학계와 관련 업계 및 단체에서 20여년 전부터 공동주택 관리를 전담하는 독립기구 설치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었다.

담당 공무원이 해야 할 역할은 공동주택 관리와 아파트 공동체의 전문지식을 쌓아 장·단기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확보해 이를 집행하는 것이 주 업무다. 그런데 현실은 거리가 너무 멀어져 있다. 순환보직으로 이동이 잦다 보니 업무파악만 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며 전문지식도 단시간에 습득이 어렵고 중요한 예산확보는 꿈도 못 꾸면서 2년마다 업무단절이 계속되면서 10년 20년 마냥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독립기구 설치가 해답이다. 우리나라는 도시국가인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아파트 비율이 높은 나라다. 7년 전 정부가 공동주택 관리 전담기구를 만들기 위해 첫 출발을 했으나 그 후 기구를 둘러싸고 서로 자기들이 차지하려고 하다 결과는 아쉽게도 다시 원점으로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당시 국토부는 전담기구의 첫 단계로 공동주택 관리를 전문으로 실행하고 있던 공기업인 주택관리공단에 전담기구를 설치한다고 했다. 그 첫 단계로 2014년 4월 8일 주택관리공단에서 ‘우리家함께 행복지원센터’ 현판식을 갖고 첫 업무를 시작했다. 행복지원센터는 예산을 미리 확보하지 못해 적은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업무부터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주 내용은 ▲아파트 대표자 선출·해임 등 입주자대표회의 구성 운영 민원 ▲관리비와 층간소음 분쟁 상담 지원 ▲공사 및 용역의 시기적, 내용적 타당성 ▲공동주택의 회계 입찰 계약 시설관리 진단서비스 업무 등 적은 예산으로 가능한 업무부터 시작하게 됐다. 당시 국토부는 “체계적인 공적관리로 아파트 관련 분쟁과 갈등을 사전 예방하고 입주민의 부담을 덜어 국민의 삶이 행복한 공동주택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 공동주택관리법을 제정하면서 갑자기 공동주택관리지원 기구를 종전의 주택관리공단에서 모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갖게 됐다.

그 후 지원기구는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 없이 LH 자체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독립기구의 역할은 어렵게 됐다. 단지 바뀐 것은 종전 국토부에서 직접 처리하던 골치 아픈 아파트 민원업무를 LH가 맡아서 해결하는 것이 센터의 주 임무가 됐다. 독립기구가 없다 보니 중요한 정책업무는 아직도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LH가 운영하는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는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도 담당하고 있으나 지원센터의 국가 지원예산이 12억원에 불과해 직원 인건비 수준이다. 지원예산 12억원은 3800만명에 달하는 공동주택 입주민 1인당 기준으로 32원의 예산으로 껌 한 개 값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입주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니 이게 말이나 될 일인가 싶다. 사실 인건비를 제하면 입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예산은 0원(제로)에 가깝다. 이것이 오늘의 아파트 입주민에 대한 지원정책의 실상이다.

독립기구란 예산과 인사가 독립되는 명실상부한 자립조직을 말한다. 독립기구가 생겨야만 공동주택 관리의 장단기 정책도 수립하고 관리주체인 관리소장의 신분보장과 처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주택관리회사를 육성해 현대적인 관리로 입주민을 위한 서비스의 질도 높이게 되고 입주자대표회의 조직과 역할도 보다 발전적인 기구로 바꿀 수 있게 된다. 전문가 양성을 위한 아파트공동체대학이나 연구소도 만들 수 있게 된다. 공동주택 관리와 아파트 공동체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이 너무나 산적해 있다.

그동안 정치지도자의 무관심으로 20여년 동안 정책지원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독립기구 설립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간단하다. 현재의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와 공동주택 관리를 전문적으로 운영해 온 주택관리공단을 통합한다면 물리적인 기구 구성은 가능하다.

전국 아파트의 84% 이상이 민간 분양아파트인 점을 고려한다면 정부주도에서 민간, 정부, 공공,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형태로 민간과 정부가 공동출자해 한국소비자원과 같은 독립기구로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제일의 아파트 공화국에서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경쟁력을 갖추고 일관된 정책과 공동주택관리 선진화가 이뤄진다면 입주민의 삶의 질도 높아지고 여기에다 3352조원에 달하는 국가자산의 장수명화로 아파트 수명을 20%를 늘릴 경우 67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혜택도 얻을 수 있게 된다.

2021년 신축년 새해에는 정치지도자들이 3800만명이 거주하는 공동주택 입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안겨주는 첫걸음인 독립 전담기구를 설립해 공동주택 관리와 아파트 공동체에 해묵은 숙제를 해결해 주는 희망의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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