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여러 분쟁 중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하자 분쟁이야말로 말 많고 탈 많은 분쟁이란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분쟁은 피아(彼我)가 확실히 구분되고, 적과 아군이 뒤섞일 일도 별로 없다. 그러나 하자 분쟁은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이 되면서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양받던 시절에는 입안의 혀처럼, 마치 자신이 분양받는 당사자인 양 살뜰하게 챙겨주던 건설사가, 입주 후 하자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기 시작하면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게 된다.

하자로 인해 겪는 일상의 고통은 어떤가. 물이 새는 집, 타일이 떨어지는 벽면, 누렇게 변색 된 벽지, 금이 간 바닥을 보고 있자면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서 제 편끼리도 생채기를 내기 일쑤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주체에게 쏟아지는 하자 관련 민원의 원흉은 사실 제대로 아파트를 짓지 못한 건설사인데도 마치 총알받이처럼 온갖 불만과 불평을 받아내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아파트를 공급하는 구조는 거칠게 말하면 주택건설사업계획을 승인받은 사업 주체가 아파트를 짓고, 수분양자들을 모집해 분양하는 사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업 주체가 아파트를 직접 짓고 분양한다고들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는 오히려 적다. 시공 자체는 건설공사 도급계약을 통해 전문 건설사에 맡기고 나머지 시행만 사업주체가 맡아 하는 방식이 더 많다.

그래서 시행사와 시공사가 서로 다르고, 분양계약서에 분양자로 등장하는 회사는 우리가 아파트 브랜드와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그 건설사가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래미안을 샀는데, 푸르지오 아파트를 샀는데, 이편한세상아파트를 샀는데, 분양자는 삼성도, 대우도, 대림도 아니고 잘 모르는 회사거나 재건축조합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시행사와 시공사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은데다 분양 시기 역시 아파트를 다 짓기도 전에 분양하기도 하고(선분양 후시공 방식), 아파트를 다 짓고 나서야 분양하기도 한다(선시공 후분양 방식). 어찌 보면 주택건설사업을 참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건설사에 정책적으로 많은 배려를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럼 아파트를 공급받는 국민의 입장은 어떨까.

아파트를 판 자와 아파트를 지은 자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는데, 아파트를 분양받은 입장에서는 분양대금을 완납하고, 아파트를 공급받은 데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니 아파트를 짓고 판 자가 동일한 경우보다 적어도 불리할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2년 12월 18일 법률 제11555호로 개정된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개정 집합건물법’이라 약칭)은 분양자에 대해서만 하자담보추급권을 인정했던 것과 달리 구분소유자에 대한 시공사의 법정 하자담보책임을 인정하게 됐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의가 있었다.

물론 기존에도 시공사에 구분소유자들이 하자보수에 갈음한 손해배상 청구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구분소유자들은 분양자에 대해 갖는 하자담보추급권을 피보전권리로 하고, 분양자가 시공사에 대해 갖는 공사도급계약상의 하자담보추급권을 대위 행사하는 방식으로 권리를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채권자 대위 방식은 채무자인 분양자의 무자력이 반드시 필요했고, 제3채무자인 시공사가 시행사로부터 공사대금이라도 못 받아 상계항변이라도 하게 되면 피대위권리가 소멸해 구분소유자의 손해배상 청구도 도루묵이 됐다. 시행사가 시공사에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둘만의 사정이지만 채권자 대위의 법리상 시공사는 구분소유자들과의 관계에서도 하자담보책임을 면하는 꼴이 됐다. 분양대금을 모두 납부하고 입주한 채 하자로 고통받는 구분소유자 입장에서는 시공사가 시행사로부터 공사대금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 어찌 알 것이며, 그로 인해 시공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청천벽력 같겠는가.

그러니 시공사에 대해서도 구분소유자들이 직접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는 개정 소식에 얼마나 들떴겠는가. 기존의 채권자대위방식으로는 구분소유자들의 권리 구제가 온전치 못했으니 이제 드디어 이들의 권리가 충분히 보호되겠구나, 시공사와 시행사가 서로 다른 경우여서 특별히 불리할 일은 이제 없겠구나 기대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시공사의 구분소유자에 대한 하자담보책임은 분양자의 회생절차 개시 신청, 파산 신청, 해산, 무자력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로만 한정됐다. 게다가 시공사의 구분소유자에 대한 하자담보책임은 시공사와 분양자 사이의 법률관계로 인해 구분소유자에 대한 책임 역시 면책될 여지로 해석될만한 규정까지 뒀다. 기존 채권자대위방식과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정 집합건물법 제9조 제3항에 따르면 ‘시공자가 이미 분양자에게 손해배상을 한 경우에는 그 범위에서 구분소유자에 대한 책임을 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개정 취지를 보면 시공사가 구분소유자에게 직접적으로 하자담보책임을 부담하도록 해 구분소유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되 시공자의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그 범위는 분양자에게 지는 담보책임 범위로 한정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시공사의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살피고 돌보기 전에 이걸 먼저 좀 살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분양받은 아파트, 분양대금 모두 납부하고 입주했는데, 하자보수가 제대로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시행사든 시공사든 자력이 있는 회사가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하자 많은 아파트를 지어 분양한 사업 당사자들이니 최종적인 책임 역시 이들이 지는 것이 마땅하다. 하필 시행사와 시공사가 서로 다른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해서, 하필 그 시행사가 별 볼일 없는 회사라고 해서, 하필 시공사가 공사대금을 다 지급받지 못했다고 해서, 시행사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못해주고, 시공사는 시행사한테 못 받은 공사대금을 상계로 퉁 쳐서 하자에 대해 더 이상 책임 없다고 손해배상 못해준다는 걸 용인해야 할까? 이렇게 건설사가 쉽게 면책받도록 집합건물법 제9조 3항을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시공사의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배려하기 전에 하자의 종국적인 책임을 시행사도, 시공사도 지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누가 가장 고통받을지 헤아리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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