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부천아파트 관리소장, 왜 극단적 선택 했나

업무 수첩서 ‘공갈협박죄’·
‘비하 발언’ 등 단어 나와

배관 교체공사 진행 중
입주민 사이 갈등 추정
유족들 “업무상 스트레스”

관리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부천시 A아파트에 배관 교체공사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부천=서지영 기자>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지난달 10일 서울 강북구 소재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이 입주민의 괴롭힘을 당해왔다며 극단적 선택을 해 공분을 산 가운데 경기 부천시 소재 아파트에서도 관리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부천 원미경찰서 등에 따르면 4월 29일 오전 8시 30분경 부천시 중동의 A아파트 화단에서 이 아파트 관리소장 B씨(60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이 아파트 옥상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현장에서는 미완성의 사직서와 가방 등 유류품이 발견됐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당초 유류품에서는 주민 갑질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지만 B씨의 거주지에서 발견된 업무수첩에 ‘공갈협박죄’, ‘배임행위’, ‘문서손괴’, ‘잦은 비하 발언’, ‘빈정댐’, ‘여성 소장 비하 발언’ 등 단어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B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입주민들의 영향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관심이 모아졌다.

유족들은 경찰 조사에서 “B씨가 10여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왔고 최근 아파트 관련 민원이 많아 업무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는 실제 4월 초 부천시 지원사업을 통해 아파트 공용 급수 및 급탕배관 전면교체공사를 시작했으며 이와 관련해 입주민들의 불만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파트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공사 시기는 입주민 대표와 소장이 회의해 정한 것인데, 아직 추운데도 배관공사를 너무 빨리 시작해 온수를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 등에 대한 민원이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기자가 찾아간 A아파트에서는 급수·급탕배관 교체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었으며 관리사무소에는 관리소장 사건과 관련해 기자들의 방문을 거절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입주민들은 관리소장 B씨를 “아주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고, 이번 일과 관련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전했다.

A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기자 방문 거절 안내가 써붙여져 있다. <부천=서지영 기자>

A아파트 경비원과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번 일과 관련해 답변을 피했으며, 공사 인부들은 관리소장의 죽음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했다. 맡은 일만 하기 때문에 소장을 본 적도 없으며, 공사와 관련해 입주민들의 불평을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파트 건물 내에 붙여진 한 게시물은 이 아파트 배관 교체공사와 관련해 아파트 내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한 입주민이 작성해 붙인 것으로 보이는 해당 게시물에는 ‘주민 의견 제안’이라는 제목과 함께 배관 교체공사 불만 개선에 대한 입주민 참여를 요청하는 내용의 글이 담겨 있었다.

작성자인 입주민 C씨는 게시물에서 “그간 많은 주민들이 동대표들과 관리실을 믿고 아파트 관련 문제에 무관심하고 살펴봄이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리해 온수배관 교체공사의 불편과 불합리 등 많은 문제점들이 주민의 의견이 무시되고 왜곡돼 집행됐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C씨는 “아파트 온수관 교체공사 불만으로 인해 190여명이 불만 개선 요청에 서명했고, 카카오톡방(모바일 채팅방)도 개설돼 소통하고 있으며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운영진 선출에 대해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다”고 알렸다.

C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부 언론 보도에서 관리소장의 죽음을 두고 서울 강북구 경비원의 경우처럼 입주민 갑질이 원인이 된 것처럼 몰아가 억울하다”며 “우리는 소장이 관두려는 것을 막고 도와주려고 했는데 사실이 왜곡됐다”고 말했다.

이후 문자를 통해 C씨는 “소장의 죽음은 여러 가지 의혹과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며 “유족들도 B씨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을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은 온수배관 공사 비리와 업체 선정과정에 대한 불합리와 관련해 입주자대표회장에게 책임을 물어 사퇴 요구를 했으며, 주민들은 관리소장이 결정권도 없고 그야말로 등떠밀려서 연루됐을 것이라 보고 소장에게 혹여 과오가 있다 해도 걱정말라며 위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물러나려던 대표회장이 공사와 관련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소장을 함께 물러나게 하려고 물고 늘어져 오히려 주민들은 관두려는 소장을 말리며 옹호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B씨에 대해 대표회장이나 대표회의의 폭언이나 괴롭힘, 사퇴 압박 등이 있었던 것인지를 물었지만 이후 C씨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A아파트 바로 옆 아파트의 관리소장은 “평소 지역 내 관리소장 모임 등에서 B씨를 봐왔는데 본인 기수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소장으로서 일을 열심히 잘 하고 있어 존경스러웠다”며 “우울증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고 성격이 활발하고 건강했으며, 다만 최근 큰 공사를 진행하면서 입주민 불만 등으로 힘들어하기는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B씨가 아파트 내 일들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만은 사실인 것으로 보여진다. 공교롭게도 이 아파트 또한 입주민 갑질 사건 경비원이 일하던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관리형태가 자치관리로 이뤄져 근무지 변경 등의 조치가 이뤄질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입주민이나 입주자대표회의의 괴롭힘이 있었다 해도 해결방법을 찾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A아파트 배관 교체공사를 일부 지원한 부천시 주택관리팀은 “부천시에서 업체선정 과정에 직접 관여를 하지는 않으며 A아파트 공사 관련 민원이 없어 공사 비리 조사를 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아직 B씨 유족 쪽에서는 아파트 주민들의 폭행이나 폭언 등과 관련한 수사 의뢰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은 B씨 죽음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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