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죽음으로 몰아넣은 공동주택 횡령사고’ 대책 모색

일상적 회계관리·
내부감사 강화해야
거액 인출시 제도 보완 필요

자치관리 시 지자체 감독 의무·
회계담당자 자격증제도·
대표회장 유급제도 등도 방안

횡령사고가 발생한 서울 노원구 A아파트 기전직원이 다른 직원들을 대신해 민원업무를 보고 있다. <이인영 기자>

[아파트관리신문=이인영 기자]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노원구 A아파트에서 경리직원이 장기수선충당금을 횡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데 이어 감독 책임 추궁에 관리소장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 수도관 교체공사를 하던 중 관리소장이 경리직원에게 공사업체에 중도금 지급을 명했으나 공사비가 입금되지 않았다는 업체의 연락에 횡령사실이 밝혀진 것으로 알려졌다.<본지 제1277호 2020년 1월 13일자 게재>

또한, 서울시와 노원구는 지난달 6일부터 10일까지 A아파트에 대해 합동회계감사를 진행, 그동안 이 아파트 공사비, 장부, 통장 등 회계관리 전반에 걸쳐 조사했다.

한편, A아파트는 지난해 진행한 2018년까지의 외부회계감사에서는 ‘적정’ 의견을 받았음이 확인돼 이 사건이 언제 시작됐는지, 어떻게 발생했는지 의혹이 커지고 있다.

5년간 외부회계감사 적정…문제는?
300세대 이상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은 연 1회 이상 외부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A아파트는 ▲2014년 B공인회계사 감사반 ▲2015년 회계법인 C ▲2016년 D회계법인 ▲2017~2018년 E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를 받았고 감사인들은 모두 ‘적정의견’을 표명했다.

공동주택 외부회계감사는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작성한 해당 주택의 재무제표가 공동주택 회계처리기준에 따라 작성·표시됐는지 감사하는 것으로, 감사인은 감사계획을 수립해 기초 회계기록과 재무제표를 대조하거나 차이를 조정하고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행한 중요한 분개 및 수정사항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감사인은 공동주택 소유의 예·적금 잔액, 질권 설정 등 사용제한 내역, 차입금 또는 보증 제공내역 등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금융기관에 대해 조회·확인을 해야 한다.

A아파트 회계감사를 진행했던 회계법인들은 서류상 문제가 없어 ‘적정 의견’을 냈다고 말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측은 감사인이 직접 은행에서 잔고 증명 등을 직접 조회하는 등 감사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하고 이를 다하지 않아 부실하게 회계감사가 진행될 경우 징계대상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공동주택 외부회계감사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측은 “외부회계감사가 관리주체에 면죄부만 준다”며 “오히려 자체 감사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대표 임기 중임제를 철폐해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 관리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국주택관리협회 김철중 사무총장은 “외부회계감사 제도가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발표된 사항으로서 증빙서류의 부족을 이유로 회계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회계감사를 했음에도 비리가 적발되는 것은 감사보고서의 조작이나 외부회계감사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며 “오히려 관리비 증가 원인만 된다”고 꼬집었다.

일상적 회계관리·내부감사 강화해야
서울 노원구 A아파트 사례와 같이 횡령 등 비리 발생은 개인적 일탈로 도덕성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임한수 법제권익국장은 “횡령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감사시스템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일탈 문제”라며 “아무리 촘촘하게 통제장치를 마련해도 회피 수법들이 나올 수 있다”고 일축했다.

한국주택관리협회 김철중 사무총장은 “관리소장의 경우 윤리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왔으나 기업회계를 기본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공동주택의 경리실무는 잘 알고 있지 않아 경리직원에 의존해야만 하는 실정”이라며 “경리직원은 전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회계관리와 직무소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공동주택 관리업무 전반에 대해 관리책임이 부여되는 관리주체에게 일상적인 회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 노원구 F아파트의 한 관리소장은 “법에 의해 실시되는 외부회계감사는 단기간 실시하는 구조적인 한계점이 있으므로 상시 감사가 가능한 내부감사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이 선결될 때 외부감사도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며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시 관리사무소가 보유한 통장도 가능하면 너무 세분화하지 말고 유사한 기능의 통장은 통합해 보유통장의 수량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회계통제의 핵심은 번거롭더라도 장부, 통장 등 회계관련 서류를 꼼꼼히 확인한 후 결재하고 집행 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는데 있다”며 장부, 지출결의서, 송금, 통장, 직인관리 등 관리소장의 일상적인 회계관리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입주자대표회의 감사 권한을 높여 내부감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국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김원일 수석부회장은 “관리비 입출금 회계 프로그램 수정 시 필히 입주자대표회장과 감사가 승인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수선충당금 등 거액 인출 시에는 입주자대표회장, 관리소장, 감사 등이 날인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며 “위탁관리 시 관리회사들 간에 연대보증을 의무화하고 자치관리 시에는 관리소장 등 현금 사고 위험이 있는 직원은 반드시 보증보험이나 연대보증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지자체 관리감독 기능 소홀…개선점은?
정부와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 기능 소홀 문제도 제기됐다.

전문적 관리가 절실함에도 대다수의 입주민은 아파트 관리에 무관심하며 입주자 등의 대표로 선출되는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들은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고 이를 보완할 관할 지자체에서는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한국주택관리협회 김철중 사무총장은 “자치관리의 경우 일정규모 이상은 지자체에서 관리감독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회계담당자에 대한 전문자격증 제도(가칭 ‘공동주택 회계자격증’)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동대표 및 관리사무소 전 직원에 대한 의무교육 제도를 신설하고 입주자대표회의 임원 등이 직무에 대한 사명감을 갖도록 동대표회장 유급제도를 마련해 책임과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김원일 수석부회장은 “전국 약 70%의 국민이 거주하고 있는 공동주택이 관리주체(관리소장) 1인에게 모든 관리 권한을 위임해 과도한 권한(계약, 집행, 인사)으로 인해 비리가 있어도 은밀하게 이뤄져 적발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국토교통부는 전국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해 비리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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