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고법 판결

도급계약명칭 사용해도
계약내용 실질 따라 법적성질 판단

도급계약 전제로 대표회의의
계약해지 손배 청구 ‘기각’

부산법원 청사전경

[아파트관리신문=이인영 기자] 아파트 경비용역계약을 둘러싼 분쟁에서 법적 성질이 도급계약인지 위임계약인지를 놓고 당사자간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는 가운데 최근 법원이 경비용역계약과 관련해 도급계약의 명칭을 사용했더라도 계약내용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업무 수행방법 지도·감독 등 위임적 요소가 더 강하다면 경비용역업체는 도급계약임을 전제로 입주자대표회의 계약해지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산고등법원 창원제2재판부(재판장 엄상필 부장판사)는 최근 경남 김해시 A아파트 경비용역업체 선정 입찰에 선정돼 계약을 체결했으나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경비용역업체 B사가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해지무효확인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B사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제1심 판결을 인정, B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 아파트 대표회의는 2015년 8월 13일 경비용역업체 B사와 계약기간을 2015년 9월 1일부터 2018년 8월 31일까지로 한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2015년 7월 23일 경비용역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에 참가했던 또 다른 경비용역업체 C사가 이에 불복해 ‘공고내용과 다른 낙찰자 선정기준을 적용해 B사를 선정, 체결한 계약은 무효이고 최저가 입찰에 응모했던 자신이 낙찰자’라며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5월 26일 법원으로부터 낙찰자 지위 확인을 인정받았고 이 판결은 지난해 6월 17일 확정됐다. 이에 대표회의는 지난해 5월 31일과 6월 7일 내용증명으로 B사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하지만 B사는 “C사와 대표회의 사이에 낙찰자지위확인소송의 판결은 2015년 8월 13일 체결된 경비용역계약의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이 판결을 이유로 한 계약 해지 의사표시는 부적법해 무효이고 계약은 유효하다”며 “도급인의 일방적인 계약해제로 인해 수급인이 입게 될 손해 7583만3000여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비업법은 경비업을 ‘각종 경비업무를 도급받아 행하는 영업’이라고 규정하는 등 전반적으로 경비업을 도급으로 파악하고 있고, 이 사건 계약도 ‘경비도급계약서’, ‘도급인’, ‘수급인’, ‘도급금액’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 경비용역계약의 법적 성질은 당사자가 붙인 계약서의 명칭이나 형식, 용어 등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그 계약내용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일부 도급계약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피고 대표회의가 원고 B사에 이 아파트 경비업무를 위탁하고 원고 B사가 이를 승낙한 계약으로 당사자 쌍방의 특별한 대인적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위임계약”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의 목적은 원고 B사가 ‘대표회의가 위탁한 경비대상시설 및 장소에서의 도난, 화재, 기타 혼잡 등으로 인한 위해발생을 방지’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지만 원고 B사로서는 목적달성 여부를 불문하고 경비업무를 수행하면 매달 일정한 보수를 받을 수 있으므로 ‘어떠한 일의 완성’이라는 도급적 요소보다는 ‘일정한 사무 처리의 위탁’이라는 위임적 요소가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계약은 피고 대표회의가 원고 B사에 경비업무의 수행방법 등에 관해 광범위한 지도·감독을 행할 수 있도록 돼 있고, 위임계약상 수임인의 복임권 제한과 유사하게 원고 B사는 피고 대표회의 승인 없이 계약상 권리의무를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계약상 업무를 하도급 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따라 “원고 B사는 피고 대표회의의 요구대로 일일 경비상황 등에 관한 경비근무일지를 유지해야 하고 계약상 경비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일체의 권한을 피고 대표회의로부터 위임받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경비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며 “이는 민법상 수임인의 보고의무, 선관의무 등의 내용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비록 경비용역계약의 당사자가 원고 B사와 피고 대표회의더라도 계약체결 과정에서는 이 아파트 관리주체였던 D씨가 절차를 주도한 것으로 보여 이 계약은 실질적으로 D씨가 관리주체의 업무 중 ‘공동주택 단지 안의 경비’ 업무 수행의 일환으로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공동주택관리법 제52조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선정하는 주택관리업자의 지위에 관해 민법 중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고 있다”며 “이 계약이 도급계약임을 전제로 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하는 원고 B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재판부는 “위임계약의 각 당사자는 특별한 이유 없이도 언제든지 위임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나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이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피고 대표회의로서는 낙찰자지위확인소송의 판결 결과에 따라 C사와 경비업무계약을 체결해야 할 사정에 처해 원고 B사와 체결한 계약과 양립할 수 없는 점, 피고 대표회의는 지난해 5월 31일 원고 B사에 내용증명우편으로 ‘2016년 6월 30일자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해 피고 대표회의의 해지통보 후 해지의 효력발생까지 1개월의 여유가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 대표회의의 계약해지는 부득이한 사유로 인한 것이고 계약 해지가 원고 B사에 불리한 시기에 행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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