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얼마 전에 공동주택과 관련한 각종 분쟁이 이슈가 된 방송에서 인터뷰를 요청한 일이 있다. 작가와 통화를 하면서 방송 주제가 무엇이고, 나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것이 드러났으면 좋겠는지 확인했다.

이런 과정은 일종의 사전 인터뷰로서 작가는 이를 토대로 질문지를 구성하게 된다. 아무튼 그 사전 인터뷰 내내 작가는 나에게 ‘제가 궁금했던 것이 바로 그거예요, 변호사님’을 연발했다. 작가는 통계자료로 확인한 결과 이면에 어떤 배경이 작동했는지 궁금하던 차였고, 나 역시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준 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작가는 사전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질문지를 작성해 나에게 보냈고, 실제 방송분 촬영을 위해 방송기자와 촬영기자들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다. 20분 정도 인터뷰 녹화를 진행하면서 이걸 어떻게 편집해서 내보낼지 자못 궁금했다. 방송을 많이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열심히 인터뷰를 해봤자 본 방송은 길어야 1분, 짧게는 몇 십초 정도로 끝나버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방송된 실제 인터뷰는 1분 정도 분량이었고, 내가 한 20분의 인터뷰 내용 중 어찌 보면 가장 자극적이었던 멘트로 채워져 있었다. 그 멘트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도 아니었다. 작가가 ‘가장 궁금했던 것이 바로 그겁니다’라고 했던 그 내용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방송을 본 뒷맛은 조금 씁쓸했다.

그 인터뷰 한 토막을 보면서 ‘언론이라는 매체가 정보전달 측면에서 참으로 대단한 힘을 가졌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자극적인 요소를 빼고는 도무지 안 되는 모양이구나’ 하는 한계도 다시 한 번 느꼈다. 기가 막히게 좋은 정보라도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전에는 무용지물이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반 일간지나 방송이 아파트 관련 이슈들을 다루는 태도 역시 자극 일색일 수밖에 없다. 한 여배우는 그가 출연한 작품보다 한때는 ‘난방 열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물론 뉴스에서 다루는 분쟁이나 이슈가 일종의 사건사고 기사에 해당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겠지만 ‘관리비는 관리인의 쌈짓돈’, ‘억대 관리비 횡령에 감사까지 부실’ 등 헤드라인으로 뽑은 제목만 보면 아파트는 그저 비리의 온상인 것만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파트 관련 분쟁들을 주로 다루는 나는 오히려 사람에 대해서는 희망적인 전망을 갖게 됐다. 현장에서 만나는 관리소장이나 동대표들의 면면, 전국 각지에서 전화 문의를 주는 얼굴 모르는 입주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이들이 얼마나 합리적인 생각과 적법한 절차 진행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관리소장이나 입주자대표에게 지나치게 막중한 책임과 전문적 소양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현실적인 의문도 함께 떠오른다. 관리소장이나 입주자들을 교육할 기회가 있을 때 관련 사례를 거론하면서 농담처럼 ‘관리소장님들은 준 법률가 수준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나나 듣는 관리소장들 모두 씁쓸하기는 매한가지다. 주택관리사는 공동주택 관리의 전문가일 뿐 법률 전문가도, 회계 전문가도, 기술 전문가도 아니다. 그 분야의 전문적인 소양과 기술이 필요하면 해당 전문가를 불러 해결하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닐까. 지나친 것을 요구하고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타박하는 것이야말로 야박한 처사다.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를 모두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야 없다. 제도 개선을 통해 깨끗한 아파트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고 권리를 제한하며 의무를 부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비리의 온상’처럼 둔갑한 아파트, 묵묵히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까지 색안경을 쓰고 보게 하는 언론이나 제도권의 접근 방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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