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분석 1] 공동주택관리법 개정 ‘경비원 대량해고’ 부르나

‘비현실적’ 조항에 업계 큰 반발
“경비원들 위한 법 아니다” 입주민들에 피해 ‘부메랑’ 우려
“통합경비시스템 전환하고 임금 싼 관리원 두게 될 것”

경비원 등 공동주택 근로자에게 업무 외 부당지시 등을 금지하도록 한 '공동주택관리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논란이 되고 있다. <아파트관리신문DB>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동주택관리법 일부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해당 업무 외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과 관련, 일선 관계자들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법안이라며 법 시행시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업무 외 부당 지시’란 의미의 모호함을 지적하며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입주자 대표 단체는 경비원들에게 경비 업무만 보게 한다면 무인경비시스템이 있어 굳이 경비원을 둘 필요가 없다며 그들을 대량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김원일 사무총장은 이번 개정 조항에 대해 “경비원은 대부분 고령으로 명칭만 ‘감시‧단속적 근로자’일뿐 실제로는 경비 업무보다 택배 보관이나 주차관리 등 입주민 생활불편을 해결하는 보조업무를 주로 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경비 업무만 보게 한다면 일자리를 잃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고령의 경비원들에게 도둑을 잡거나 화재사고를 막는 등 감시‧단속적 업무만 하게 한다면 그분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그런 경비 업무는 최근에 다 자동화시스템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 가운데 경비원 인건비가 관리비의 20%를 차지하는데 경비원에게 경비 업무만 보게 한다면 많은 아파트에서 굳이 임금을 지급하면서 경비원을 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돼 이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많은 입주민들이 경비원들의 경비업무 외 서비스에 따른 생활 편의에 만족을 느껴 경비원 필요성을 높이 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통합경비시스템 도입에 따라 경비원 인원 감축을 추진하는 아파트가 있을 때마다 많은 입주민들이 반대하는 것도 그 이유가 크다.

최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5500여 가구)에서는 통합전자경비시스템 도입 결의에 따라 경비원들을 대거 축소키로 해 이 아파트 경비원들이 입주민들에 호소문을 올리는 일이 발생했다. 호소문에서 경비원들은 선문대학교 행정학과 하재룡 교수의 연구결과를 인용, “무인경비 체계로 바꾸면 관리비는 오르지 않겠지만 입주민이 누리는 편의는 줄어들어 경비원 고용을 유지하는 쪽이 편익은 높아진다”며 “방범‧안전관리(22%) 외에 청소(23%), 택배관리(21%), 쓰레기분리수거(17%), 주차관리(13%) 등 많은 일과를 담당하고 있는 경비원들의 일자리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경비원들이 대표회의의 통합경비시스템 도입에 따른 경비원 대량 해고 결정에 호소문을 작성해 게시했다. <사진제공=독자>

“경비원들은 고용안정 가장 원해”

전아연 입장과 마찬가지로 많은 아파트에서 이번 개정안 시행으로 인한 경비원 대량 해고를 우려하고 있다. 경기도 내 한 아파트 관리소장 A씨는 “경비원들에게 경비 업무만 보게 한다면 많은 아파트에서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해 경비원들을 대량 해고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경비업무만 보게 할 것이라면 굳이 경비원을 동마다 많이 둘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대표회장 B씨도 “경비원들을 위한 법이 아니다”라며 “경비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고용안정이지 그런 법을 바라는 것이 아닌데, 법이 현실적인 문제를 잘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전아연 김 사무총장은 또 “경비원에게 해당 업무 외 일을 시키지 못하게 하는 법이 생기면 사소한 일에도 고소‧고발 등이 이뤄질 수 있는데 아파트에서 경비원을 두려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아연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될 것에 대비해 노무자문위원 등과 논의해 현재의 경비원 지위가 경비 업무뿐만 아니라 주민생활 보조 업무 등까지 모두 맡을 수 있도록 경비원 명칭을 변경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김원일 사무총장은 “경비원들이 법 시행 이후에도 고용을 이어가고 입주민들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의 반발도 적지 않다. 한국경비협회 경기지회 소속이자 공동주택 관리 및 경비용역 등 사업을 맡고 있는 율산개발의 김경렬 사장은 “아파트 경비원은 경비업법상의 경비원과 같은 감시‧단속적 개념이 아닌 ‘관리원’ 개념의 기능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법이 이렇게 나오면 경비원 대신 관리원을 두는 관리원 제도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당지시의 명확한 기준 필요”

이번 개정안 조항이 경비원 등 근로자 입장에서는 단편적으로 반길 수 있겠으나, 조항 내용의 애매모호한 표현 때문에 혼선이 있을 수 있어 유권해석 등을 통한 명확한 명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강기웅 사무총장은 “경비원 등 근로자의 해당업무 외 부당지시 등에 관한 금지 규정은 그동안 입주자대표회의, 입주민 등의 사적인 심부름 등 부당한 지시에 대항할 수 없는 경비원등 입장에서는 타당한 입법으로 사료된다”고 전제한 뒤, “다만 경비원의 경우 경비업법에 경비업무 외의 업무가 금지되고 있으나, 경비계약서 등을 통해 재활용업무, 주차업무 등을 허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향후 경비업법 개선을 통해 공동주택 현실을 고려해 계약서상 인정된 업무는 허용될 필요가 있다”며 “국토교통부에서는 해당 조항을 확대해 경비계약서 등에 의해 공동주택에서 허용하고 있는 업무까지 금지되지 않도록 명확한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주택관리협회 김철중 사무총장은 “업무 외 부당지시는 이론적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사업장에서 업무 외 부수적인 일들이 많다”며 “경비원의 경우 업무 외 지시를 금지할 경우 경비 외 업무를 담당할 인력이 추가로 요구되는데 이러한 경우 인건비 상승에 따라 관리비 증가로 입주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고, 또 경비원뿐만 아니라 공동주택 근로자에 대한 규정이라 행정 인력도 추가로 요구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 사무총장은 “이러한 문제를 감안해 업무 외 부당 지시·명령이 아닌 정상적인 업무 외, 즉 단순히 부당한 지시·명령만을 금지해야 한다”며 “이미 본회의를 통과한 사안이어서 곧바로 개정이 어려우므로 유권해석을 통해 본 업무 외 부수적 업무 지시·명령 금지가 아닌 정상적인 업무 외 부당한 지시·명령 금지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관리업체 관계자는 “경비원들 대신 통합경비시스템을 도입하고 임금이 더 싼 관리원을 두면 입주민 관리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데 입주민들이 경비업무만 하는 경비원을 선호하겠나”라며 “이번 금지 조항은 반드시 폐지돼야 할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경비업법에서 이미 경비원들에게 경비업무 외 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처벌규정까지 두고 있는데 공동주택관리법에서 똑같이 별도의 강제조항을 둘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부당지시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갈려 분쟁 발생 가능성이 크고, 입주민들이 경비원 등 근로자에 대한 지시를 관리소장을 통해 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로 인해 근로자의 고소‧고발이 이뤄지면 결국 관리주체인 관리업체만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일부 아파트에서 관리소장이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단지 내 낙엽 쓸기, 눈 치우기 등을 지시했다가 이의 제기를 받거나 검찰 고발까지 간 사례가 있었으며, 경비원을 줄이고 대신 미화원‧관리원을 고용한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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