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법치주의 국가라는 말은 말 그대로 법치(法治), 즉 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라는 의미다. 법이 아닌 지배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의 법치주의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담시키려면 반드시 법률로써 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같은 원칙은 법전이나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밀접하게 우리 생활 곳곳에서 문제된다.

법률에 의해서만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이 원칙은 어떻게 우리 생활에서 구현되는 것일까? 사실상 법률로 모든 사항을 규율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적절한 것도 아니다. 법률을 제정하는 곳은 국회지만 실질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곳은 행정부이기 때문에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 필요한 세세한 항목은 법률의 구체적인 위임을 받아 행정부의 명령으로 정할 수 있다. 행정부의 명령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내리는 대통령령, 즉 ‘시행령’과 행정각부의 부령인 ‘시행규칙’으로 나뉜다.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에 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고(헌법 제75조), 대통령은 이러한 법률의 위임이 있는 경우에 시행령으로써 대강을 정하고 다시 행정각부의 부령(시행규칙)에 위임할 수 있다(헌법 제95조).

이를 법률의 위임이라 하고 법률의 위임을 받아 제정된 명령을 법규명령(法規命令)이라 한다. 그리고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이런 법규명령으로써만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헌법적 근거나 법률의 위임 없이 제정되는 행정규칙은 대외적인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어 국민을 직접 규율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원칙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청이 관리주체에 부과한 과징금 처분을 취소했다. 법원이 해당 처분을 취소하면서 설시한 이유는 과징금 처분의 근거가 된 사업자 선정지침이 법률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규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법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위 판결에서 문제된 지침은 구 주택법 시행령(2013. 1. 9. 개정 전) 제55조의4 제1항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것인데 위 시행령 규정 자체가 그 당시에는 법률의 위임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위 지침 역시 법률의 근거를 둔 법규명령으로 볼 수 없고, 위 지침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논리다.

법원이 법령의 내용을 잘 해석해줘 다행이고, 위법한 과징금 처분이 취소되니 다행이다 이렇게 끝날 수 있는 문제일까? 위 판결 이후 신문 보도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접하게 된 많은 분들이 당 법인으로 다툴 방법을 문의해왔다. 과징금을 다투지 않고 모두 내버린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말이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국가가 행하는 처분을 옳다고 믿고 따른 국민일수록 손해를 보고 억울함이 가중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국가가 국민에 내리는 처분에 승복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특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자신들이 행하는 처분이 부과대상에게는 얼마나 중한 것인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행대로 관성처럼 처분할 것이 아니라 처분의 근거가 명확한지, 과연 법률에 근거가 있는지, 시행령에 근거가 있다면 법률의 구체적 위임을 받아 규정한 것인지 여부까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첫 단추를 잘못 꿴 책임은 그런 위법한 시행령을 제정한 측에 있을 것이다. 법률의 근거나 위임도 받지 않은 채 함부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위법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제정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한 혼란은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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