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층간소음' <5> / 표승범 공동주택문화연구소 소장

평소 위·아래 세대간 관계
어떤가 따라 확연히 다른 반응

세심한 배려는 여럿 함께 사는
아파트에선 기본 자세
 

“302호에는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은퇴를 하신 70대 노부부가 살고 있고, 그 아랫집 202호에는 맞벌이로 아직 자녀가 없는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세대 구성원이다. 이런 평범한 이웃 간에 층간소음이 발생하게 될 경우 평소 위·아래 세대간의 이웃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대표적인 3가지 유형이 있다.

“어느 잠 못 이루는 한밤중에 303호에서 쿵쿵거리며 거실을 오가는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1. 평소 위·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 순간적으로 분노가 생긴다.
이러한 경우,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무의식중에 떠오른다고 한다. 그러한 현상은 위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상태에서 소음으로 인한 불쾌한 마음이 들게 되면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이 불쑥 떠오르며, 그러한 무의식적 불쾌함은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예전에 자신의 돈을 떼먹고 도망간 사람이나 자신에게 심한 상처를 준 사람의 모습, 그러한 사람이 딱히 없을 경우에는 TV나 영화의 악역으로 나온 사람의 모습도 순간적으로 스친다고 한다.

2. 왕래는 없어도 누가 사는지 아는 정도의 상황에선, “아~ 저 사람 한밤중에 왜 돌아다니는 거야 짜증 나게!”
윗집에 누가 사는지 알기만 해도 막연한 분노보다는 짜증이 난다. 그렇게 짜증이 나는 상황에서는 ‘다음에 만나면 “어르신, 한밤중에 그렇게 쿵쾅거리지 마세요. 저희 일찍 출근해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려야지’라며 해결의 가능성이 있게 된다.

3. 평소에도 인사를 잘하고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는 먹을 것도 주고받는 사이에선, “시집 간 막내딸이 애들 데리고 왔나 보네.”
이처럼 똑같은 상황에서도 이웃과의 관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것을 체감소음이라고 한다. 체감소음은 같은 소리도 받아들이는 사람과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것을 말한다.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듯 좋아하는 음악 장르도 다르고 소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층간소음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나도 막상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 윗집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다. 그저 누가 사는지 정도만 알기에 층간소음이 발생하면 이해보다는 짜증이 나곤 한다.

언젠가 주말 저녁에 조용한 거실에서 영화를 한 편 볼 때가 있었다. 한참 몰입도가 극에 달했던 자정이 넘은 시간에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거실을 종횡으로 누비며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유리로 만든 고급스러운 거실등은 파르르 떨면서 때아닌 크리스마스 종소리를 울리곤 한다. 하지만 분노는 생기지 않았다. 당시 윗집에는 70이 다돼가는 노부부와 장가 안 간 노총각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간혹 서재로 쓰는 방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고 있으면 그 총각의 방인 듯한 윗집에서(참고로 우리 집은 1층이 없는 2층에 서재 옆방은 안방 욕실과 주방이라 거의 위층의 소리라고 확신을 한다) 들려오는 외침,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다고!” 그렇다. 종종 늦은 시간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가는 둔탁한 층간소음은 늦도록 장가 안 간 아들 술 마시고 들어오면 밥이라도 차려주려는 듯 다리를 끌며 오가는 어르신의 발걸음 소리였다. 나도 그 내막을 짐작하고 나서는 가슴이 짠해서 영화를 보다가 ‘쯧쯧 장가를 얼른 가야 할 텐데…’ 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시끄러운 게 시끄럽지 않은 건 아니다. 아무리 내 집이라도 늦은 시간 너무 편하게 일상생활을 하면 안 된다.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것! 여럿이 함께 모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기본자세이다.

다음엔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은 인류의 주거문화 역사에서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파트라고 하는 공동주택의 역사에 대해 ‘인류는 언제부터 아파트에 살게 된 걸까?’ 란 제목으로 이야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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